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 자아통제감-1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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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감에 대해서

“저는 33이며 지금 s그룹에 다니고 있습니다.

여자 친구도 N금융회사에 다니고 있고 성격도 잘 맞고 좋습니다.

저는 초중고 다닐 때부터 한 번도 전교 5등 밑으로 떨어진 적도 없고

교우관계도 매우 평범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도 어학연수며

외국에서 박사학위 취득까지 별 어려움 없이 해냈고

지금은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밤마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잘 못잔지도 몇 년이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내 인생이 없어지는 것 같고 이 우울함의 바닥이 

어디까지인지 너무 힘이 듭니다.ㅜㅜ

저의 이런 고민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아이엠에 메일을 드립니다.”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내용의 문의 메일이 왔다.


사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배부른 고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진짜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고민은 객관적으로는 배부른 고민이 맞다.

그래서 더욱 그가 느꼈을 소외감과 외로움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주위 사람들과 이 고민을 나눌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고민이든지 간에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다는 그 느낌은

자신을 더욱 고독하게 만들고 마음을 답답하게 짓누를 수 있다.

사실 인간에게 소외감과 외로움은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는 고통만큼 크다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공감받지 못하는 느낌은

사람으로 하여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의욕을 잃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똑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혹시 지금 당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번 칼럼을 통해 당신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담아 써내려 간다.


좀 진부 할 수 있지만 우리 나라 속담에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 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나는 지루한 것은 딱 싫어하는데 이글에서는

이 속담만큼 딱 맞은 표현은 없는 거 같아서 인용하기로 했다.


이 속담의 의미는 알다시피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당사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싫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많은 강원감사, 경기감사, 충정감사도 중에 평양감사라고 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실제 속담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에는 

조선시대에 정치적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중국과

경계선으로 맞닿아 있던 지역이 평안도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신이나 상인들이 대부분을 평양을 통과해만 했고

그 지역에 있으면 권력과 경제적 이익을 두루 취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한 마디로 누구나 출세하기 위해서 가장 가고 싶어하는 1순위 지역이었던 것이다.

객관적인 조건으로는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고 좋은 곳이라는 것.

그래서 싫어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 같지만

누구나 탐내는 그런 자리라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본인이 싫으면 아무리 남들이 좋다고 해도 그만이라는 것!!


나도 약간 그런 면이 있는 거 같다.

예전 직장은 정말 완벽하고 퍼펙트한 조건에

소위 말하는 라인을 잘 타서 승진도 굉장히 빠르게 되었고

앞으로의 승진도 보장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고

오히려 매일 출근하는 게 괴로울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사람은 누구나 주위의 환경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기를 원한다.

억지로 강요받거나 시키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거부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 중에 하나이다.


쉽게 예시를 들자면 내가 뭔가 하려고 했다가도 누가 그것을 하라고

지시하듯이 명령조로 말해버리면 하기 싫어지는?

누구나 청개구리 같은 마음이 마음 한구석에 있는 것도

반항적인 아이 한명쯤은 키우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이런 특징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특징을 “자아통제감” 이라고 한다.

이 자아통제감은 사람이 뭔가 하고자 하는 의욕과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자아 통제감이란?

운명이나 주위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환경을 쥐고 있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행동할 수 있다는 느낌을 스스로 갖는 것이 사람에게는

중요하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일들과 마주하게 된다.

직장에서 상사와의 문제가 발생하고

동기, 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부모님도 내 편이 아닌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여러 문제가 서로 엉키고 엉켜 내 마음은 공황 상태가 되어간다.


하지만 여기서 중심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누구나 생길 수 있고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어떤 때는 지혜롭게 잘 해결 나갔던 경험도 있지만

어떤 때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멘붕 상태가 되는 것이다.

소위 이런 멘붕상태는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느낄 때

가장 무력해진다고 한다.


어떤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아통제감이 상실된 상태일 때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큰 무력감을 느끼고

우울해져 나를 가장 힘들고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였던 엘리자베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제국의 황후라면 뭐든지 자기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고 한다.

평소성격이 자유분방한 그녀에게 황실생활은 고역이었다.

아 그런 그녀가 어떻게 황후 될수 있었을까?

언니의 맞선 자리에 함께 참석했다가 우연히 황제의 눈에 띄어 황후가 된 것이었다.

아마 황제가 첫눈에 반할 정도로 황제 취향저격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자신이 한 번도 원해본 적 없는 삶이었고

황실 생활도 답답하기만 했다.

어디나에 있는 시어머니와의 갈등과또 주변에 흔히 보는 무관심 남편 까지 

그녀가 스스로 어찌 해볼수 없는 상황에 그녀는 지쳐 갔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스스로 통제는 커녕 모든 상황들에 의해 통제를 받고만 있었다.

그렇게 아이까지 빼앗기고 지긋지긋한 그곳을 나와 

외국을 떠돌며 생활하게 되었지만 황실을 떠나서도

여전히 황후의 신분이었기에 어디를 가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이러한 통제속에서 자아통제감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쯤 되면 결과는 예상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무력감을 극복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삶을 마감했다.


아무리 멋있고 높은 지위나 위치 신분에 올라가더라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다.


2편 계속